30년의 진단
1970년대부터 미국 의학계는 한 가지 진단을 표준화했다. 흔들린 아기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 SBS). 영아에게 특정 3가지 증상이 나타나면 “강하게 흔든 결과”라는 결론. 이 진단을 근거로 30년 동안 수많은 부모와 보호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의학계와 법정 모두에서 그 진단의 과학적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992년 이후 미국에서 SBS 진단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무죄가 입증된 사람은 41명이다. 그 중 한 명은 22년을 사형수로 살았던 텍사스의 로버트 로버슨이다.
이 글은 한 의학 진단이 어떻게 형사 증거의 표준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는지, 그리고 의학과 법정이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검증된 자료로 정리한다.

3가지 증상 삼각형
SBS 진단의 핵심은 “3가지 증상 삼각형(triad)“이다.
- 뇌출혈 (subdural hematoma)
- 망막 출혈 (retinal hemorrhage)
- 뇌부종 (brain swelling)
1970년대 영국 신경외과의 노먼 거스리(Norman Guthkelch) 가 처음 이 삼각형을 제시했다. 그는 당시 한 영아 환자의 사망 원인을 분석하며 “강한 흔들림이 이 3가지를 동시에 만들 수 있다”고 가설했다.
1980년대 미국 학계가 이 삼각형을 “강한 흔들림의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였다. 30년 동안 의학 교과서와 법정 모두 이 삼각형을 “표준 진단 기준”으로 사용했다. 한 의사가 “이 영아에게 3가지 증상이 모두 있습니다”라고 증언하면, 법정은 거의 자동으로 “누군가가 흔들었다”는 결론을 받아들였다.
흥미로운 사실: 노먼 거스리 본인은 후일 자신의 가설이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후회했다. 2012년 사망하기 전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처음 제시한 가설은 모든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명시적으로 말했다.
같은 증상의 다른 원인
2000년대 들어 다른 의학 연구가 이 삼각형의 단정성을 흔들기 시작했다. 같은 3가지 증상이 다른 여러 원인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짧은 추락: 1.5미터 이하 추락도 같은 3가지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영아가 침대나 소파에서 떨어진 경우도 SBS와 구분이 어려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출생 외상: 출생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 손상이 후일 같은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일부 영아의 뇌출혈은 출생 후 며칠 안에 자연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 의료 상황: 혈액 응고 장애, 일부 감염(특히 세균성 수막염), 비타민 K 결핍, 일부 대사 질환 등이 같은 3가지 증상을 만들 수 있다.
영아 돌연사 증후군(SIDS): 일부 SIDS 사례에서 사후 검사로 SBS와 비슷한 증상이 발견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연구는 “진짜로 강하게 흔들면 뇌출혈 전에 목이 부러질 것”이라는 충격적 결론을 제시했다. 영아의 목 근육은 약하기 때문에, 뇌에 손상을 줄 만한 강도의 흔들림이라면 목 골절이 먼저 발생해야 한다는 생체역학적 분석이다. 그러나 SBS 진단을 받은 사건의 다수에서 목 골절이 발견되지 않았다.

1992 이후 41명 무죄
National Registry of Exonerations(NRE)에 따르면 1992년 이후 미국에서 SBS 진단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무죄가 입증된 사람은 41명 이다.
이 41명의 공통점:
- 다수는 영아의 부모 또는 베이비시터
- 평균 10년 이상 수감 후 풀려났음
- 가족과 직장을 잃었음
- 자녀의 사망에 대한 사회적 비난까지 함께 받았음
- 41건 중 다수가 “SBS 진단 외에 다른 증거가 거의 없는” 사건들
무죄 입증의 메커니즘은 대부분 비슷했다. 이노센스 프로젝트 또는 비슷한 단체가 사건 자료를 재검토하면서, 원래 진단을 다른 의학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새 전문가들이 “3가지 증상이 SBS 외 다른 원인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41건은 “발견된 사례”만 카운트한 것이다. 발견되지 않은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학자는 “수백 명 이상이 비슷한 방식으로 잘못된 유죄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견을 바꾼 전문가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의학 전문가들의 의견 변경이다. NBC News가 2024년에 식별한 약 24명의 의학·법의학 전문가 가 “과거에 SBS 진단을 강력히 지지했지만, 새 연구를 본 후 의견을 바꿨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 중 7명은 더 나아가 “내 과거 증언으로 잘못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무죄 입증을 적극 돕고 있다” 고 말했다. 한 의사는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충분한 과학 없이 너무 자신 있게 증언했다. 30년 후 그 자신감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알게 됐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못 유죄 받은 사람들의 무죄 입증을 돕는 것뿐이다.”
이런 의견 변경은 매우 드문 일이다. 의학 전문가가 자신의 과거 증언이 “과학적으로 부족했다”고 공개 인정하는 것은 직업적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다. 24명이 동시에 이런 입장을 표명한 것은 SBS 진단에 대한 의학계 내부의 합의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SBS 진단의 시조였던 노먼 거스리 본인도 후일 의견을 바꿨다는 점은 결정적이다. 자신이 제시한 가설이 후대에 너무 자동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본인이 비판한 것이다.
2024 뉴저지 대법원 판결
법정에서의 결정적 전환점은 2024년 뉴저지 대법원의 판결 이었다. 6대 1의 표결 로 대법원은 “SBS 진단은 신뢰할 수 없는 junk science”라고 명시하고, 그 진단에 대한 전문가 증언을 두 건의 다가올 재판에서 사용 금지했다.
이는 미국 한 주 대법원이 SBS를 공식적으로 거부한 첫 사례였다. 판결문에서 다수 의견은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SBS 진단의 기초가 된 과학적 증거는 현재 학계에서 광범위하게 논쟁 중이다. 그 논쟁이 해결될 때까지, SBS 진단을 형사 재판의 결정적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 판결은 다른 주 법정에서도 참고 판례로 인용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사법 시스템에서 한 주 대법원의 판결은 다른 주에 대한 직접적 구속력은 없지만, 법적 논리의 모델 역할을 한다.

Robert Roberson 사례
가장 주목받은 최근 사례는 텍사스의 로버트 로버슨(Robert Roberson) 이다.
2002년 그의 2세 딸 니키가 사망한 후, 의사들이 SBS 진단을 내렸다. 로버슨은 그 진단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수가 됐다. 그는 22년을 사형수로 살았다.
2024년 10월 17일, 사형 집행을 앞두고 미국 학계, 일부 정치인, 그리고 그의 변호인단이 “의학 진단이 오류일 가능성”을 들어 집행 정지를 요청했다. 핵심 주장:
- 니키의 사망은 SBS가 아닌 폐렴과 약물 부작용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음
- 당시 진단을 한 의사들 중 일부가 “내가 그때 틀렸을 수 있다”고 공개 인정
- 새로운 의학 검토가 가능함
사형 집행은 일시 보류됐다. 2025년 현재 재심 청구가 진행 중이다. 22년 수감 후 그가 정말 무죄인지 아닌지는 의학·법정 양쪽의 판단을 모두 기다리는 상태다.
로버슨 사례는 SBS 논쟁의 가장 가시적 시험대다. 미국 사법 시스템이 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가 후속 SBS 사건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의학과 법정의 충돌
이 사건의 의미는 단순히 한 진단의 신뢰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학과 법정의 충돌 이다.
의학계 내부에서도 합의가 형성되지 않았다.
옹호 측:
- 미국 소아과학회(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AAP)는 “SBS는 여전히 유효한 진단 카테고리”라는 입장을 공식 유지
- 다수 임상 소아과의
- 일부 법의학 전문가
회의 측:
- 일부 신경병리학자
- 일부 법의학 전문가
- 2024 뉴저지 대법원
- 24명의 공개 의견 변경 전문가
양 진영의 차이는 “진단이 사용되는 맥락”에 대한 입장 차이다. 옹호 측은 “의학적 진단으로서 SBS는 여전히 유용하다”고 보지만, 회의 측은 “형사 증거로 사용되기에는 정확도가 부족하다”고 본다. 즉 “진단의 의학적 유용성”과 “형사 증거의 신뢰도”가 다른 기준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학계 내부의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매우 어려운 위치다. 법정이 “의학계가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면 진행 중인 사건들이 미해결로 남고, 반대로 어느 한쪽 입장을 채택하면 의학적 정확성에 대한 논쟁이 법정으로 옮겨간다.

진단의 미래
SBS 논쟁이 어떻게 결론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전처럼 “3가지 증상이 있으면 자동으로 SBS”라는 단순한 진단은 더 이상 형사 사법에서 표준이 아니다.
2026년 현재 일부 변화가 진행 중이다.
- 미국 일부 주는 SBS 진단에만 의존하는 유죄 판결을 자동 재심하는 절차 도입
- 다른 주들도 비슷한 방향 검토 중
- 의학 학회들이 “진단 시 다른 원인 배제 절차 강화” 가이드라인 발표
- 형사 재판에서 SBS 진단 증언 시 “대안 가능성” 의무 명시
41명의 무죄 입증은 이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의학 진단과 형사 증거 사이의 거리
30년의 진단, 41명의 무죄, 한 의학 가설의 흔들림. 흔들린 아기 증후군 논쟁은 한 가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의학 진단이 형사 증거로 사용될 때, 그 진단의 과학적 기반이 어디까지 검증됐는지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
의학 진단은 본래 “환자 치료를 돕는 도구”다. 그 도구가 형사 증거로 사용될 때, 의학적 유용성과 형사 증거 신뢰도 사이의 거리가 명확해져야 한다. 의학적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진단이 법정에서 “확정”으로 둔갑하는 순간, 잘못된 유죄가 발생한다.
의학과 법정이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의 검증을 받아들이는 일이 잘못된 유죄를 줄이는 핵심 길이다. 41명의 무죄 입증과 24명의 전문가 의견 변경, 그리고 2024년 뉴저지 대법원 판결은 그 길의 한 단계다. 다음 단계가 무엇일지는 의학계와 법정이 함께 결정해야 한다.